1. 계마수조(繫馬樹棗), 말을 매던 나무의 유래
'계마수조'는 한자 뜻 그대로 '말을 매어두는 대추나무'라는 뜻입니다. 이 나무의 역사는 경희궁이 지어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본래 경희궁 터는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의 사저였습니다. 원종은 생전에 이 대추나무를 지극히 아껴 직접 심고 기르며 아침저녁으로 말을 매어두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자리에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왕암(서암)'이라는 바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광해군은 이 소문을 듣고 집을 빼앗아 경희궁을 지었지만, 정작 본인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궁의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무의 주인인 원종의 아들 인조가 왕위에 올랐으니, 나무와 땅의 기운이 참으로 묘합니다.

2. 200년을 이어진 죽음과 부활의 기록
계마수조가 '영험한 나무'로 불리는 이유는 약 200년 동안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조선의 경사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 1661년(현종 2년) : 고사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나자 숙종이 탄생했습니다.
- 1721년(경종 1년) : 다시 싹이 트고 꽃이 피었을 때 영조가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 1782년(정조 6년) : 100년 가까이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정조 시대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때 정조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 문효세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정조는 이 현상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해 풍년이 들어 수확한 10여 두(斗)의 대추를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며 기쁨을 함께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뿌리가 살아있어 맹아(새순)가 돋은 것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국운의 부활과도 같은 상징이었습니다.

3. 정조의 특별한 애정과 수원 조원동
정조는 세손 시절 거처하던 존현각 안마당(흥태문 인근)에 이 나무가 있었기에 누구보다 계마수조를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자신이 지은 《경희궁지》에도 이 나무의 위치와 내력을 상세히 기록할 정도였죠.
이러한 특별한 경험 때문일까요? 정조가 현재의 수원시 조원동(棗園洞) 일대에 대추나무를 대대적으로 심도록 명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백성들의 삶이 대추나무처럼 풍요롭고 상서롭기를 바라는 정조의 마음이 담긴 결정이었습니다.
4. 전통 농업의 지혜: 과일나무 시집보내기(가수법)
옛 문헌에는 대추나무처럼 해거리가 심한 나무들을 관리하는 재미있는 비법이 전해집니다. 바로 가수법(嫁樹法), 즉 '나무 시집보내기'입니다.
- 방법 : 음력 1월 초하루나 대보름 해 뜨기 전, 납작한 돌을 주워 나뭇가지 사이에 끼워둡니다.
- 기록 : 세종 때 전순의가 지은《산가요록》이나 조선 후기 산림경제》에도 언급된 이 방법은, 식물에 스트레스를 주어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결실을 유도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농법입니다.

마치며: 우리 곁의 숨겨진 역사
경희궁의 계마수조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임금과 신하가 기쁨을 나누고 백성의 풍요를 기원했던 소통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궁을 거닐 때 마주치는 평범한 나무 한 그루도 어쩌면 수백 년 전의 기적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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