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산등성이를 수놓는 진달래는 우리에게 흔한 꽃이지만,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나무였습니다. 부친을 향한 그리움과 왕실의 안녕을 염원했던 정조대왕, 그가 사랑한 진달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 융릉의 주산, 화산(花山)을 물들인 ‘화산두견’
정조대왕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명당인 수원의 화산(현재 화성시)으로 옮기고 융릉(隆陵)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융릉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산이 바로 즉 화산(花山)입니다.
수원팔경 중 하나로 꼽히는 ‘화산두견(花山杜鵑)’은 바로 이 화산 일대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풍경을 말합니다. 밤새 피를 토하며 울었다는 두견새의 전설처럼, 붉게 피어난 진달래는 정조에게 단순한 봄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부친을 향한 붉은 눈물이자,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지극한 효심의 투영이었습니다.

2. 수원화성에 심은 903그루의 진달래
정조는 부친을 위해 건설한 신도시, 수원화성을 단순한 군사 요새가 아닌 '꽃과 나무의 도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1799년의 기록에 따르면, 정조는 화성의 매향동 일대에 903그루의 진달래를 심도록 명했습니다.
이는 신도시의 경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넘어, 사도세자의 넋이 머무는 화산의 기운을 성안까지 이어오려는 상징적인 행보였습니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성곽길을 걸으며 정조는 백성들의 안녕과 부친의 명복을 동시에 빌었을 것입니다.

3. 창덕궁 후원 ‘상화조어연’의 주인공
정조의 진달래 사랑은 궁궐 안에서도 이어졌습니다. 꽃이 만개하는 음력 3월이면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신하들과 함께 꽃을 감상하고 낚시를 즐기는 ‘상화조어연(賞花釣魚宴)’을 열었습니다.
이 연회의 주인공은 단연 진달래였습니다. 특히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수원화성에서 무사히 마친 이듬해 봄, 후원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를 보며 정조는 왕실의 평화를 만끽했습니다. 당시 창덕궁의 진달래는 정조가 이룬 효(孝)의 결실이자, 신하들과 소통하며 태평성대를 꿈꾸게 했던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4. ‘참꽃’ 진달래의 성정과 정조의 내면
진달래는 예부터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불렸습니다. 척박한 산성 토양에서도 꿋꿋이 자라며, 화려한 양지보다는 큰 나무 아래나 북향 사면의 그늘을 선호하는 진달래의 성정은 정조대왕의 절제된 내면세계와도 닮아 있습니다.
정조는 진달래의 깊은 빛깔이 북쪽 사면에서 더욱 푸르고 깊어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내면의 단단함과 깊은 정서를 중시했던 그의 철학이 진달래라는 꽃에 투영된 것입니다.

맺음말
정조대왕에게 진달래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의 기록이자, 어머니를 향한 효도의 상징이며, 백성에게 선사하고픈 봄의 축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산에서 마주하는 진달래 한 송이에도 조선 성군이 품었던 뜨거운 효심이 서려 있습니다. 올봄, 진달래가 피어나거든 그 붉은 꽃잎 속에 담긴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잠시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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