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시리도록 하얀 겨울 숲이나 정원을 걷다 보면 묘한 장면을 목격하곤 합니다. 온 세상이 두꺼운 눈 이불을 덮고 있는데, 유독 나무 밑동 주변만 동그랗게 눈이 녹아 땅이 드러나 있는 모습 말이죠.
마치 누군가 쿠키 커터로 눈을 콕 찍어낸 듯 정교한 이 원통형 공간을 서구권에서는 '해빙 원(Thaw circles)'이라 부릅니다. 오늘은 겨울 정원의 신비, 해빙 원이 생기는 과학적 이유와 그 속에 담긴 나무의 겨울나기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 나무는 스스로 열을 내는 '난로'일까?
나무 주변의 눈이 먼저 녹는 것을 보고 많은 분이 "나무도 사람처럼 체온이 있어서 눈을 녹이는 걸까?"라고 궁금해하십니다.
엄밀히 말하면 나무는 사람과 같은 정온동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복사열'이라는 마법을 부립니다. 그 원리는 우리가 겨울에 검은색 옷을 입으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 빛의 흡수와 반사: 흰 눈은 태양 광선을 대부분 반사(알베도 효과)하지만, 어두운색의 나무껍질은 태양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 열에너지 전환: 흡수된 빛 에너지는 열로 변하고, 따뜻해진 줄기는 주변 공기와 접촉한 눈을 서서히 녹입니다. 특히 햇빛이 강한 남쪽이나 남서쪽 줄기 부분에서 이 현상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2. 해빙 원을 만드는 5가지 상호작용
단순히 줄기의 색깔 때문만은 아닙니다. 나무 주변에는 눈을 더 빨리 녹게 만드는 여러 가지 '미기후(Micro-climate)'가 형성됩니다.
- 나무의 복사열: 앞서 말한 어두운 껍질이 태양열을 포착해 방출하는 장파 복사가 핵심입니다.
- 지표면의 단열 감소: 나무 줄기 바로 옆은 가지에 가려 눈이 덜 쌓이기도 하고, 공기와의 접촉면이 넓어 녹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 바람의 보호막: 나무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병풍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줄기 주변의 따뜻해진 공기가 흩어지지 않고 머물며 눈을 녹입니다.
- 뿌리의 생물학적 활동: 땅속 깊은 곳, 나무 뿌리 근처의 미생물 활동과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열기 역시 지표면의 온도를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 낙수 효과: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먼저 녹아 떨어지는 물방울은 지상의 눈을 물리적으로 녹이는 '온수 샤워'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3. 양날의 검, 따뜻함이 주는 '동상'의 위험
나무에게 이 열기는 생존을 위한 신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합니다.
늦겨울, 햇빛에 달궈진 나무껍질 내부의 세포들이 "아, 이제 봄인가 보다!" 하고 잠에서 깨어나 물을 끌어올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밤사이 기온이 다시 급강하하면 이 수분이 얼어붙으며 세포막을 터뜨리게 됩니다.
이를 '피소(볕데임, Sunscald)' 또는 '상렬(서리 갈라짐, Frost crack)'이라고 부릅니다. 과일나무 줄기에 흰색 수성 페인트를 칠하거나 흰색 플라스틱 튜브를 감싸주는 이유는, 바로 이 빛 반사율을 높여 나무가 겨울잠에서 너무 일찍 깨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 나무의사 화산의 '겨울 정원' 산책 팁
겨울 정원을 보며 '춥겠다'는 동정보다는,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구나'라는 경외심을 가져보세요. 침엽수 아래 눈이 녹은 공간은 숲속 작은 동물들에게는 훌륭한 대피소가 됩니다. 나무가 만든 작은 온기 하나가 숲 전체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셈입니다.
올겨울, 눈이 내린 뒤 나무 주변에 생겨난 '해빙 원'을 발견하신다면 그 나무이름을 나지막이 불러주세요. 겉으로는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아도, 그 안에서는 봄을 향한 뜨거운 생명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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