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줄기의 녹색 페인트 칠?... 숨겨진 진실
숲길을 걷거나 동네 가로수를 보면, 줄기에 녹색 페인트 칠 처럼 보이거나 회색 무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나무 줄기에 누군가가 물감을 칠한 것 같기도 하고, 곰팡이가 핀 것처럼 보여 "나무가 병들었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하죠. 그런데 이 녀석의 정체가 식물도 곰팡이도 아닌 '복합 생명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 우리나라 유일의 등록된 '지의류병'
놀랍게도 우리나라 수목 병해에 '지의류'라는 이름이 병명으로 정식 등록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매실나무 지의류병]입니다.
보통 지의류는 나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공생 생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실나무(매화나무) 등에 발생하는 특정 지의류(Parmotrema austrosinense 등)를 수목의 생장을 저해할 수 있는 '병해'의 범주에서 다루기도 합니다.

2. "나무를 죽이는 병일까, 단순한 세입자일까?"
지의류병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분이 오해하시지만, 사실 지의류의 본질은 '기생'이 아닌 '부착'입니다.
- 세입자 지의류: 지의류는 뿌리를 내려 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 표면을 집터로 삼아 광합성을 하며 스스로 살아갑니다.
- 언제 병이 될까?: 문제는 발생량이 너무 많을 때입니다. 지의류가 나무 줄기를 넘어 잎까지 뒤덮으면 광합성을 방해하고, 잔가지의 숨구멍을 막아 가지마름 증상이나 조기 낙엽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는 단순한 세입자가 아닌 '병'으로서 관리가 필요해지는 것이죠.

3. 전문가도 헷갈리는 '부실 진단'의 함정
최근 가로수 이식 심의 등 현장에서는 이 지의류를 두고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 녹병으로 오해: 느티나무 등에 핀 지의류를 보고 '녹병'이라 진단하여 이식 불가 판정을 내리거나,
- 피소 피해로 오해: 나무껍질이 타서 벗겨진 '피소(Sunscald)'와 단순 지의류 부착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형이 조금 불량하거나 지의류가 붙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이식 불가' 대상은 아닙니다. 지의류는 환경 지표 생물로서 공기가 맑은 곳에서 더 잘 자라기도 하므로, 과학적인 뿌리 조사나 토양 분석 없이 지의류만 보고 나무의 상태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4.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현재까지 매실나무를 제외하면 지의류에 의한 수목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셔도 됩니다. 다만 과수원이나 분재 등의 특별한 수목의 경우 아래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 가벼운 청소: 비눗물을 묻힌 부드러운 솔로 살살 문지르면 쉽게 떨어집니다. (너무 세게 문지르면 수피가 상해 진짜 병균이 침투할 수 있으니 주의!)
- 약제 처방: 피해가 심각해 가지가 마를 정도라면 등록된 살균제(이미녹타딘트리아세테이트 등)를 사용하여 방제할 수 있습니다.
- 환경 개선: 지의류는 햇빛과 습기를 좋아합니다. 통풍이 잘되게 전정을 해주거나 주변 습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산책길에 만난 나무 줄기의 하얀 무늬, 이제 무서운 병으로만 보이지 않으시죠? 대기 오염에 민감한 지의류는 어쩌면 우리 동네 공기가 깨끗하다는 훈장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나무가 숨 가쁠 정도로 너무 많이 덮여 있다면 그때는 전문가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