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의사가 바라본 뿌리로 살아남는 숲의 생존 전략
자연은 때때로 우리가 ‘한 그루의 나무’라고 믿어 온 개념을 근본부터 흔듭니다. 미국 유타주 피시레이크 국립산림 깊숙한 곳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사시나무 숲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무거운 단일 유기체로 평가받는 존재가 살아 있습니다. 라틴어로 ‘나는 퍼져 나간다’는 뜻의 **판도(Pando)**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 숲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 판도의 유전적 실체
판도는 약 43만㎡에 달하는 면적에 4만7천여 개의 사시나무 줄기를 지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이 모든 줄기는 땅속에서 하나의 거대한 뿌리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보는 수만 그루의 나무는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복제된 줄기’**입니다.
지상의 줄기는 평균 100~130년을 살다 쓰러지지만, 뿌리는 죽지 않습니다. 줄기가 고사하면 뿌리에서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새로운 줄기가 다시 발생합니다. 나무의사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고사가 아니라 **개체 갱신(regeneration)**이며, 숲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이해해야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2. ‘죽음’을 이용한 생존: 재난에 강한 뿌리 전략
판도의 나이는 최소 8만 년으로 추정됩니다. 빙하기와 간빙기, 수많은 산불과 기후 변동을 거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역설적으로 산불과 교란입니다. 산불로 지상부가 모두 소실되더라도, 깊고 넓게 퍼진 뿌리는 살아남아 경쟁 식물을 제거한 토양에서 더욱 강하게 새 줄기를 밀어 올립니다.
이는 “지상부 고사 = 개체의 죽음”이라는 단순한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3. 우리나라 대나무 숲과 판도의 공통점
이러한 생존 전략은 우리나라의 대나무 숲에서도 확인됩니다. 대나무 역시 지상부는 수십 년 내 고사하지만, **지하경(地下莖)**이 살아 있는 한 새로운 죽순이 계속 발생해 숲은 유지됩니다. 겨울철 지상부가 말라 죽은 듯 보여도, 뿌리가 살아 있다면 이는 죽음이 아니라 휴면과 갱신의 과정입니다.
따라서 수목이 ‘죽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외관이 아니라 뿌리 생존 여부, 조직 활력, 재생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과학적 진단 행위입니다.

4. 나무의사가 말하는 ‘죽음의 기준’
나무의사에게 수목의 죽음이란, 단순히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마른 상태가 아닙니다.
✔ 뿌리와 줄기 조직의 괴사
✔ 양분와 수분 이동의 완전 차단
✔ 재생 조직의 소실
이 세 가지가 확인될 때 비로소 ‘고사’로 판단합니다. 판도와 대나무 숲은 우리에게 수목의 생존을 개별 줄기가 아닌 전체 시스템으로 보아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맺음말: 뿌리가 살아 있다면, 숲은 끝나지 않는다
판도는 말없이 증명합니다. 나무는 혼자 살지 않으며, 죽음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땅속에서는 새로운 시작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무의사에게 판도는 단순한 기록 보유자가 아니라, 수목 진단이 얼마나 신중하고 과학적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