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산행을 하다 보면 다른 나무들은 모두 가지가 앙상한데, 유독 마른 잎을 잔뜩 매달고 있는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참나무류(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겨울이 되면 나무가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왜 참나무들은 죽은 잎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걸까요? 나무의사가 전문적이면서도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1.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 생존을 위한 전략
나무가 겨울에 잎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낙엽'이라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잎이 수명을 다해서가 아니라,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생존 전략입니다.
- 수분 손실 방지: 겨울에는 땅이 얼어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어렵습니다. 잎이 계속 달려 있으면 기공을 통해 수분이 증발(증산 작용)하여 나무가 말라 죽을 수 있습니다.
- 에너지 절약: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는 겨울에 잎을 유지하는 것은 가성비가 낮은 일입니다. 따라서 잎을 버리고 휴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 물리적 손상 방지: 잎에 눈이 쌓이면 그 무게로 인해 가지가 부러질 수 있습니다. 잎을 미리 떨어뜨려 눈의 하중을 줄입니다.
반면, 상록수(소나무 등)가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유는?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상록수는 잎의 표면적이 좁고(바늘잎), 겉면에 두꺼운 왁스층(큐티클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포 내부에 부동액 역할을 하는 성분이 있어 영하의 날씨에도 잎이 얼지 않고 수분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2. 낙엽이 지는 과학적 원리: '떨어져나감층'의 형성
나무가 잎을 떨어뜨릴 때는 단순히 힘이 빠져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 스스로 잎과 줄기 사이에 벽을 만듭니다.
- 일조량 감소 감지: 가을이 되어 햇빛이 줄어들면 나무는 '앱시스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 떨켜층(이층, Abscission layer) 형성: 잎자루와 가지가 연결된 부위에 특수한 세포층인 '이층'이 만들어집니다.
- 영양분 차단: 이 층은 통로를 차단하여 잎으로 가는 수분을 막고, 잎에 남은 영양분을 줄기로 회수합니다.
- 분리: 연결 부위가 약해지면 바람이나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잎이 떨어지고, 가지의 단면은 코르크처럼 단단하게 밀봉되어 세균 침입을 막습니다.
3. 참나무류가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는 이유: '고엽 현상'
이제 본론입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같은 참나무류는 가을에 잎이 갈색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봄까지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고엽 현상(Marcescence)이라고 부릅니다.
① 미성숙한 이층(떨어져나감층) 형성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참나무류의 경우 이층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낙엽활엽수들은 가을에 이층을 완성해 잎을 깔끔하게 떨어뜨리지만, 참나무류는 이 과정이 불완전한 상태로 겨울을 맞이합니다. 결국 물리적으로 줄기와 잎이 강력하게 결합된 상태로 얼어붙게 됩니다.

② 어린 나무의 보호 본능
흥미롭게도 고엽 현상은 성숙한 큰 나무보다는 어린 나무(치수)나 큰 나무의 아래쪽 가지에서 더 자주 관찰됩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진화론적 가설이 있습니다.
- 초식 동물의 위협: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사슴이나 고라니가 나무의 부드러운 눈(Bud)을 따먹으러 옵니다. 이때 맛없고 마른 잎이 눈을 감싸고 있으면 동물의 접근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 봄철 거름 확보: 잎이 겨울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멀리 가버립니다. 하지만 봄에 새순이 돋을 때 즈음 잎이 떨어지면, 나무 바로 밑에 쌓여 분해되면서 자신의 뿌리에 직접적인 영양분을 공급하게 됩니다.
- 수분 증발 억제: 마른 잎이 가지 끝의 눈을 감싸주어 겨울철 찬바람으로부터 눈이 마르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요약 및 결론
참나무가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치밀한 진화의 결과입니다. 불완전한 이층 형성이라는 생리적 특징을 이용해 초식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듬해 봄 자신에게 필요한 거름을 확보하는 영리한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책 중에 갈색 잎을 달고 있는 참나무를 보신다면, "아, 저 나무는 지금 자기만의 방식으로 겨울을 버티며 봄을 준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