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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인문학

겨울정원, 왜 우리 집 마당은 삭막하기만 할까? (설계 전략과 식물 선택)

by ideas-2538 2026. 1. 4.

흔히 '정원'이라고 하면 꽃이 만발한 봄과 푸르른 여름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정원사에게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계절은 바로 겨울입니다. 많은 이들이 겨울 정원을 그저 '식물이 잠드는 죽은 공간'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특히나 11월부터 3월까지, 무려 5개월간 식물의 성장이 멈추는 한국에서는 더욱 삭막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바로 정원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겨울 정원이 가진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설계 전략, 그리고 겨울에도 생명력을 뿜어내는 정원을 만드는 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겨울정원(Winter Garden)이란 무엇인가?

겨울정원은 추위로 인해 대부분의 식물이 휴면기에 접어드는 계절에도 시각적 즐거움과 생태적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정원을 말합니다. 단순히 온실(Conservatory)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조경 설계적 측면에서는 눈 덮인 풍경 속에서도 구조미와 색채를 유지하는 실외 정원을 뜻합니다. 겨울정원의 핵심은 '꽃'이 사라진 자리를 '선(Line)'과 '질감(Texture)', 그리고 '수피(Bark)'로 채우는 데 있습니다.

그라스 중심의 겨울정원

 


2. 우리가 몰랐던 겨울정원의 아름다움

겨울정원은 화려한 색채가 걷히고 난 뒤 드러나는 수목의 골격(Skeleton)을 감상하는 계절입니다.

  • 구조적 절제미 : 복잡한 잎사귀에 가려졌던 나무의 수형이 드러나며 동양화 같은 여백의 미를 선사합니다.
  • 빛과 그림자의 조화 : 낮은 각도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서리 내린 식물체에 닿을 때 발생하는 보석 같은 반짝임은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장관입니다.
  • 생태적 안식처 : 마른 꽃대와 열매는 겨울 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며, 정원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3. 성공적인 겨울정원 설계를 위한 5가지 핵심 고려사항

겨울정원이 삭막해 보이는 이유는 계절 탓이 아니라 식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설계의 부재' 때문입니다. 다음 요소들을 배치하면 겨울에도 눈이 즐거운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없다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으세요.

① 수피(Bark) : 겨울 정원의 색채 담당

꽃이 없는 겨울, 나무의 껍질은 가장 훌륭한 색채가 됩니다. 정원의 포인트가 되는 디자인 요소입니다.  

  • 흰말채나무(Red-twig Dogwood): 눈 위에서 강렬한 붉은색 줄기를 뽐냅니다.
  • 자작나무: 하얀 수피가 겨울의 정적과 완벽하게 어우러집니다. 다만 기후변화로 중부지방 이남 식재는 어렵습니다.
  • 노각나무/배롱나무: 얼룩덜룩하게 벗겨지는 수피의 질감이 조형미를 더합니다.

수피가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

② 풍경과 배경(Landscape & Background)

겨울에는 시야가 넓어지기 때문에 정원 너머의 배경이 중요해집니다.

  • 상록수의 배치: 주목, 소나무, 서양측백 등을 배경(Screening)으로 심으면 겨울에도 정원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하얀 눈과 대비되는 짙은 녹색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③ 식물의 천의(Succession): 마른 모습까지 디자인하라

꽃이 진 뒤의 모습도 정원의 일부입니다. 이를 **'식물의 천의'**라고 합니다.

  • 그라스(Grass)류: 수크령이나 억새는 겨울에도 갈색 톤의 질감을 유지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선사합니다.
  • 수국: 마른 수국 꽃차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천연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겨울 정원의 부피감을 채워줍니다.

④ 겨울철 볼거리: 열매와 상록 식물

  • 낙상홍/남천: 붉은 열매는 겨울 새들을 불러모으고 무채색 풍경에 점점을 찍어줍니다.
  • 만년청/청목: 추위 속에서도 푸른 잎을 유지하는 식물들을 동선 근처에 배치하세요.

⑤ 구조물(Hardscape)의 활용

식물이 힘을 쓰지 못하는 계절일수록 벤치, 아치, 조각상, 조명 같은 하드스케이프가 정원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특히 야간 조명은 겨울 정원의 긴 밤을 환상적으로 바꿉니다.

말채나무류와 맥문동(AI 작성)


4. 주의: 겨울 정원에서 피해야 하는 식물

겨울 정원을 설계할 때는 관리 효율성과 시각적 연속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식물들은 신중히 고려하거나 피해야 합니다.

  • 겨울에 꽃대가 남지 않는 초본 : 지상부가 완전히 사라지는 식물은 겨울 정원을 비어 보이게 만듭니다. 겨울에도 마른 꽃대나 줄기가 형태를 유지하는 수종을 선택해야 합니다.
  • 내한성이 약한 식물 : 특히 중부 지방에서는 강설이나 적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추위에 고사하는 식물은 피해야 합니다.
  • 잡초화 우려가 있는 식물: 번식력이 지나치게 왕성한 일부 억새, 띠, 대나무류 등은 정원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변으로 퍼져나가 관리가 힘들어질 수 있으므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식재해야 합니다.

겨울철 꽃대가 없거나 적설시 바닥에 주저 않는 초본류는 피해야 한다.

5. 겨울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겨울정원의 문제는 식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겨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봄의 화려함을 위해 겨울을 비워두기보다는, 수피의 질감과 마른 풀의 흔들림을 설계에 담아보세요. 낙엽이 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나무의 진정한 모습처럼, 겨울정원은 정원사의 깊은 내공이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올겨울, 여러분의 마당에도 노랑말채나무와 은빛 억새를 심어 '지루하지 않은 겨울'을 준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